따라오세요 - 청계천 문화관


나는 청계천 문화관에서 한 사람의 큰 욕심을 본다. 그것은 기념에 대한 강한 열망이다. 청계천 문화관 앞에 청계천 복원에 도움을 주신 분들의 이름이 빼곡히 새겨져 있는 것과 다른 방식일 뿐 내용은 다르지 않다. 아무리 그 형태를 달리 한다고 하더라도 만든이의 의도는 달라지지 않는다. 기념비이며 찬가이다.

청계천 문화관에 답사하기 전부터 가지고 있었던 선입견은 왜 그것이 거기에 있는가 이다. 그동안 수없이 청계천을 드나드는 동안 단 한번도 내가 찾게 만들지 못한 장소가 청계천 문화관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한강의 기적에서 말하는 한강이 강원도의 산간지형을 가로지르는 작은 물길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청계천 문화관이 있는 장소는 지금 우리가 청계천이라고 부르는 풍경과는 거리가 먼 곳이고, ‘청계천에서 파는 부품들만 모아도 탱크를 만들 수 있다는 그 청계천도 아니다. 청계천 문화관이 그곳에 존재하는 것을 타당하게 하는 것은 그 곳이 1-3공구로 나뉘어 진행된 청계천 복원사업의 제 3공구에 포함되었다는 사실뿐이다.

 

그러니 사람들은 그곳에 청계천 문화관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을 때 ?’라고 반문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누구라도 전시된 청계천의 풍경과 반투명 커튼월 밖으로 보이는 지방하천 사이에 차이점이 있다는 것을 인정할 것이고 그것은 청계천 문화관이 태생적으로 밖에 가질 수 없는 한계점이다. 그 한계점은 만든이가 무엇인가를 기념하고자 했을 때 만들어졌다. 그 장소라던가 그 형태, 내용은 부수적인 것이었을 뿐이다. 청계천 문화관을 만든 사람은 건축가가 아니었다.

 

그러므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청계천 문화관이 청계천 문화관이기를 포기하는 것이다. 최초의 그 의지를 해체시킬 때 비로소 해결의 실마리가 보일 수 있다. 청계천과의 접점을 모색할 수 도 있고, 주변 지역과의 연결을 찾을 수도 있다. 가장 먼저 이루어져야 할 것은 청계천 문화관이기를 포기하는 것이다.

 

현재 청계천 문화관은 그 자체로는 훌륭한 건축이고 재미있는 공간이다. 그러나 의도를 가지고 있는 건축은 철저하게 고립되어 있다. 건축 안에 만들어진 은 올림픽대로처럼 시선은 밖으로 머물 수 있으되 그곳으로 더 가까이 다가가진 못하게 한다. 철저하게 길이 제공하는 판타지에 집중하고 한장 한장의 슬라이드 화면으로서의 풍경만을 제시한다. 사람들이 시선이 건물 뒤쪽으로 향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그것은 기념하고자 하는 것이 결코 그 이면의 것은 아님을 애써 말한다. 그래서 청계천 문화관의 이면도로에서는 청계천과의 거리가 더 멀게 느껴진다.

 

청계 10가를 넘어서는 청계천은 일반적인 지방하천과 다르지 않다. 그것은 그 형태뿐 아니라 그것이 사용되어지는 형태에서 더 극명하게 드러난다. 뜨내기 관광객들 대신에 신문을 읽는 어르신들이 그 장소를 점유한다. 여기서는 청계천 자체의 긴 흐름이 사라지고 주변 지역과 끊임없이 연결되는 장소성이 생성된다. 그러므로 청계천 문화관은 그 장소에서 어떤 방식으로 주변 지역과 청계천을 연결시킨 프로그램을 만들어 낼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그러나 청계천을 향한 긴 벽은 청계천과 그 후면의 지역을 철저하게 구분지어 생각할 것을 강요한다. 청계천 문화관의 훌륭한 건축과 재미있는 공간은 기념의 의지를 포기했을 때 처치 곤란한 것들이 된다. 이것이 청계천 문화관이 잘못된 건축일 수 있는 이유다.



by 제라늄 | 2009/10/05 16:18 | 트랙백 | 덧글(0)
연습

자주, 무엇이든 써야겠다. 당장 좋은 글이 나오지 않아도, 좋은 글을 쓰기위한 훌륭한 연습이 될것이다.

by 제라늄 | 2009/09/29 22:42 | 트랙백 | 덧글(0)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에 대한 여러가지 이야기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에 대한 많은 우려의 목소리를 듣는다.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는 '스타 건축가에 대한 무분별한 선호'를 성토하는 하나의 상징이 된 듯 하다. 아직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의 성공과 실패에 대해 가늠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이것이 국립민속박물관과 국회의사당과 예술의 전당의 뒤를 잇는 시대를 대표하는 건축이 될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그것이 좋은쪽이든 나쁜쪽이든 간에.

나 역시 이 새로운, 전혀 새로운 건축이 완공되어졌을 때 만들어지게 될 어떤 변화에 대해서 가늠하기는 어렵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는 공포의 대상이 되었는지 모른다. 어쨋든 서울시는 보다 불확실한 쪽에 많은 가능성을 바라보고 자하 하디드를 선택했다. 여기서부터 문제는 여러가지가 나열될 수 있다. 건축가들이 납득하기 어려운 절차가 있었을 것이며, 특히 오세훈 시장이 마음에 들어했다는 부분이 어느정도 영향이 있었을지, 그것이 옳은 일이지에 대해서 생각해 봐야 한다. 또 자하 하디드가 유행 이상의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건축가인지, 동대문 운동장 시설의 일부를 보존한다는 설계 지침상의 내용이 반영되지 않은 안이 당선되는 것이 옳은 것인지에 대해서도 따져봐야 한다. 많은 시간이 지났고 또 많은 것들이 변했지만 여전히 이 거대한 건축에서는 우울한 시대의 부조리가 담겨있다. 많은 사람들이 청계천의 성공적인 데뷔에 도취되어 그것이 안고있는 부조리와 부조리를 지적하는 시선을 경원시 했던 것이 한 인간에 대한 그릇된 판단으로 이어진 것과 같이 이같은 절차상의 문제는 건축 자체의 가치판단에서 벗어나 사회적으로 중요하게 다루어져야만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를 둘러싼 논쟁의 중심에는 형태가 있다. 이 논란에는 여지없이 동대문 운동장의 장소성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나는 군생활 동안 동대문 주변에 꽤 오랜시간에 걸쳐 주변을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나에게는 동대문 운동장의 화려했던 기억이 없지만, 이미 쇠락한 운동장의 어디에도 그 흔적은 남아있지 않았다. 동대문 운동장의 기억이 나의 윗세대들에게는 그 이상의 가치가 있는 유산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내가 동대문에서 가장 크게 느낀 인상은 그곳이 대한민국의 어느 곳보다 역동성이 넘치는 곳이라는 점이다.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밀리오레, 두산타워 주변은 동대문이라는 거대한 상권에서 극히 미미한 일부다. 동대문 운동장 너머로 그보다 수배 많은 쇼핑몰들이 밀집되어 있고, 밤 10시가 넘어가면 그곳은 대한민국의 어느 곳보다도 분주한 시장이 된다.
대한민국의 모든 옷가게들이 한 주 동안 팔 옷을 떼가지 위해 이곳으로 모인다. 한번에 옷봉투 서른개들 든다는 달인이 여기에서 일하고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밤 10시에 문을 열어 새벽 6시에 문을 닫는 민들레영토가 여기에 있다. 끝도 없이 이어진 동대문 야시장엔 노량진 수산시장에는 없는 젊은 감성과 연말 명동에는 없는 삶의 역동성이 함께 있다.
또, 동대문은 옷을 파는 곳일 뿐만 아니라 옷을 만드는 곳이기도 하다. 동대문시장 주변에는 원단이나 아예 단추나 지퍼만 전문으로 파는 상가가 있다. 손님이 뜸한 오전에는 그런 의류 부자재 상가와 원단가게들을 오가는 오토바이들이 쇼핑객들을 대신해 동대문을 채운다. 마네킹만 파는 거리가 있고, 옷봉투만 파는 거리도 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동대문 상권의 역동성은 마치 항구와 같다. 다양한 삶의 부스러기들이 여기에 부대끼며 살고 있다. 그것이 동대문이 명동이나 강남과 차별화 되는 지점이다. 그런데 그 거대하고 북적이는 항구의 한가운데에서 동대문 운동장은 어떤 의미일까.


동대문 운동장은 이미 그 기능을 상실한 거대한 구조물이었다. 구조는 있되 실제적인 기능을 담지 않는다는 점에서 신전과 같다. 대부분의 날을 굳게 닫친채, 동대문 운동장은 상징물로 남아있다.

동대문 운동장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그 기억이 존치되길 바란다. 나 역시 너무나 쉽게 기억을 지우고 다시 쓰는 방식에 큰 거부감이 있다. 그러나, 때로는 그래야 할 필요도 있다. 동대문이라는 항구에 동대문 운동장은 너무나도 큰 신전이다. 그것도 너무나 많은 것을 가로막고 있다. 내가 군대에 가기 전까지 동대문 시장에서 동대문 운동장 쪽으로 길을 건너 본 적이 없다. 그 너머를 궁금해 한적도 없다. 동대문 운동장 안에는 한국 근현대사의 추억이 얽혀있지만 그 밖으로는 지금도 밤을 세우는 삶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그것의 존치가 가치있는 만큼 그 나머지 것들도 중요한 문제이다.

물론, 그 답이 자하 하디드의 건물이 아닐 수 있다. 그러나 그를 비판하는 많은 말들은 오로지 건물만을 보고 있는 듯 하다. 자하 하디드의 건물과 철거된 동대문 운동장과 또 가까이에 있는 동대문과 또 복원될 성곽들만 보고 있다. 그러나, 동대문 운동장의 운명과 관련되어 있는 것들은 그 밖에도 많이 있다. 그 많은 사람들 중에 아무도 상인이라던가 동대문 시장같은 얘기가 없는 것이 이상하다. 자하 하디드의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는 (그녀의 많은 작품들처럼) 실망스러운 것은 아니다. 아마도 그 건물은 많은 문제점들이 있겠지만 대지 전체로 보앗을때는 건물을 강조하면서도 많은 부분을 공원과 성곽을 위해 비워주웠다. 가장 상권이 활성화된 흥인문로를 따라 건물이 배치되고 그 후면을 비운것과 또 유동적인 형태로 인해 그 경계가 허물어져 비워있는 것과 채워져 있는 것이 함께 있는 것은 그렇게 나쁜 선택이 아니다. 이 순간만큼은 그녀의 유동적인 형태가 유효하게 작동한다.


결론적으로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는 성공적인 사업이 될 것이다. 건물이 완공되었을때 전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건물에 사람들은 호기심을 보일 것이고 언론들은 다투어 이야기 거리를 만들어 낼 것이다. 동대문 시장이 더 새로워 지고 더 좋은 환경이 되었다고 생각할 것이고 더 많은 쇼핑객들이 모일 것이다. 드디어 사람들은 동대문 운동장쪽으로 길을 건널 것이다. 그리고 디자인 플라자가 그 자체로 관광명소가 되지는 못하더라도 동대문 시장을 소개하는 안내책자의 간판사진 쯤은 될 것이다.

물론, 중요한 얘기가 아닐 수 있다. 건축가가 고민하는 것은 단순히 개발이익을 따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러나, 언젠가 그 건물이 완공되고 언론들이 호들갑들을 떨 때, 소위 건축가라는 것들은 아무것도 모르면서 쓸데없는 소리만 하고 있다고 할 시민들에게 우리가 몰라서 그러는게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누군가는 이런 얘기도 해야한다. 그리고 동대문 시장의 역동성과 그들의 생계에 대해서도 이야기 해야한다. 그러면서 그 미래와 발전도 그려야 한다. 이런 말들이 전부 있어야 한다. 언제까지 동대문 운동장을 이야기하면서 자하 하디드만 찾을 것인가.

by 제라늄 | 2009/08/24 03:51 | 트랙백 | 덧글(1)
이미 충분히 - 이재하 '내손동 주택'
이 글을 쓰기 위해 이 건물의 이름을 처음 찾아봤다. 공간에 기재된 건물명은 '내손동 주택'이다. 사람이름으로 치면 '경기댁' 쯤 될만한 이름이다. 특별히 부를 이름이 없을때 사는 곳으로 구분지어 부르는 방식이다. 건물도 딱 그만큼이라는 생각이 든다.

 건축가가 지은 건물에는 화려한 이름이 붙는것이 많다. 이름이 화려한 만큼 그 뜻도 높고 화려하다. 그런 주택은 그냥 길을 걷다가도 알 수 있다. 건축가가 지은 집이구나 하고. 그에 반해 이 집은 잘 모른다면 그냥 좋은 집이구나 하고 지나갈 것 같다. 어쩌면 새로 지은 집인지도 알수없을것도 같다. 외벽에 오래된 벽돌을 모아 쌓았다고 하지만 굳이 그것이 아니더라도 나이를 먹은 것 같은 젊잖음이 있다.

건축 잡지를 통해 많은 집들을 봐왔지만 특별히 반가움이 느껴지는 건물들은 없었다. 모든 집들이 '사보아 빌라' 나 '낙수장'이 되고 싶어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주거에 대한 새로운 시도와 제안은 있지만 잘짜여진 편안한 집을 찾아보긴 힘들었다. 너무 크고 새롭고 화려하며 불편하다. 부유한 클라이언트의 재력에 기대 자의식의 발현 기회를 찾고 있을 뿐, 현대 주거에 대해서는 일찌감치 아파트에 그 자리를 양보한다. 전통 공간을 계승했다거나 또는 변화하는 현대인의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했다거나 하는 설명은 우리같은 평범한 사람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다. 단지 건물의 수식어로써 사용될 이 단어들이 전통 공간의 계승이나 현대인의 라이프스타일에 미치는 영향은 극히 미미하다.

물론, 그런 건물들 중 일부는 매우 훌륭하고 그 의도는 대부분 높이 살만하다. 그러나, 집이 오페라 하우스나 초고층 빌딩이 아닌 다음에야 '나중에 이런 집에서 살면 좋겠네'라고 생각할 만한 집이 없는 것은 이상하다. 나는 외국에 나가본 경험이 없어 잘 모르지만 아무리 네덜란드라고 해서 건축가가 짓는 모든 개인주택이 NM빌라처럼 생기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우리나라 건축가는 이것이 더 '좋은 것'이라고 클라이언트의 무지렁을 탓해가며 건축을 하는 것일까.





내손동 주택에 대한 반가움은 그런 것 같다. 우리 집앞에 지어져도 크게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지 않을 것 같은 '그냥 집'
평면은 작은 집 답게 알뜰하게 구석구석을 채우고 있고 벽돌과 나무와 콘크리트의 사용은 눈에 띄지 않으면서도 단정한 느낌이 있다. 통유리 창을 사용했음에도 현대적이기 보다는 편안한 느낌이다. 오래 집을 지어본 목수가 지어낸 집같다.

어릴때 그림을 그리면 스케치는 해놓고 색칠을 하는 걸 두려워 했다. 지금도 건축 그래픽을 만들때 색을 쓰는것을 어려워 한다. 그래서 무채색을 많이 쓰고 색을 많이 쓰지 않는다. 나는 건축가들이 열심히 도면을 짜서 설계를 해 놓고 마감은 적당히 노출콘크리트로 해놓은 듯한 건물을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특별히 그 회색의 감성을 좋아해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 재료를 선택하는 것 역시 수채화에 색을 고르는 것과 같이 신중함과 경험을 필요로 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 부분은 적당히 생략하는 것 같아 아쉽다.
내손동 주택이 훌륭한 건축인지는 알 수 없다. 그렇지만 꼼꼼하게 벽돌 하나하나를 세어가며 지은 집이 좋은 건축임에는 틀림없다. 이 집은 지금 한국 현대 주거에는 비어있는 어떤 지점에 있다. 나는 그것이 마음에 든다. 이 이상이 되지 않아도 이미 충분히. 이토록 이만큼.
by 제라늄 | 2009/08/24 03:04 | 트랙백 | 덧글(0)
한장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의 한 장면은 공효진이 가족의 탄생에서 극중 엄마(김혜경)가 죽고 난 뒤 혼자 방에서 우는 장면이다. 힘들고 지칠때 그 장면을 보면 어쩐지 힘이 솓는다. 아직 나는 울때가 아닌가보다. 더 힘을 내야 겠다.

by 제라늄 | 2009/08/16 21:16 | 트랙백 | 덧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