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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들의 아비투스와 나라 망하는 이유
흔히 전경이라 불리는 사실은 의무전투경찰순경이란 정식명칭과 줄여서 의무경찰, 더 줄여서 의경이라 불리는 바로 그 존재. 내가 바로 현역 군복무를 의경으로 대신하고 있는 소위 전경이다. 그동안의 촛불집회동안 무슨말이라도 한마디 해볼까 생각했던 적이 있지만 네이버댓글에 '전경들 때리지 마세요'라는 댓글을 다는것 만으로 폭력경찰 리스트에 내 이름과 집주소와 전화번호와 싸이월드 주소가 올라가는 현실에 (내 얘기는 아니지만 우리 중대에 있었던 실화다. 그것도 무더기로) 무슨말을 쓰기도 어려웠고 잘 쓰지도 못하는 글솜씨가 너무 답답하고 사실 중대피씨실에서 긴글을 쓴다는거 자체가 어려운 일이라서 미루고 미뤄왔던 일을. 그래 지금은 조금이라도 무슨 말을 하면 좀 사람들이 그래도 한번쯤은 들어봐주지 않을까 하고 쓴다. 전경들의 아비투스라고 했다. 사실 지금 20대를 보내고 있는 '우리세대'의 정치적 무관심, 혹은 사상적 무관심에 대한 논의는 그리 신선지 않다. 되풀이되고 되풀이되고 되풀이 되서 그 와중에는 책도 몇번 나오고 뭐 그랬던 얘기이지 않나. 그런데 왜 하필 전경들의 아비투스일까. 아마도 '전경들도 사람이에요'라는 식의 투정이 가지고 있는 무정치성. 촛불집회든 이명박이든 일단 나한텐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라는 식의 한편 철없어 보이는 투정이 몹시도 맘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고 또 그런 식의 주장이 일견 잘 먹혀들어가서 그래 전경들은 좀 불쌍하지 않냐 라는 논의가 영 탑탁치 않았나 보다. 기실 나도 그런식의 논의가 그리 맘에 들지는 않는다. 대게는 우리가 격은 어려움을 충분히 설명해주지 못하고 더 중요하게 왜 때리는지에 대한 설명도 되지못한다. 사실 '고생' '수고' 같은 말들은 시위현장을 뛰는 전경들을 설명하기에 적합하지 못하다. 사실 나는 초등학교 이후로 싸움이란걸 해본적도 없고, 소위 '깡'이란것도 부족한 천상 연필잡이에 불과하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시위현장에 일선에 서면 너무 무섭다. 며칠전 촛불집회는 아니지만 장안동에서 일선에 선날 안마방 포주쯤되는 사람들과 한바탕 일전을 벌이고는 잠시 숨을 돌리는 동안 나는 내손이 그렇게 심하게 떨리는걸 처음 봤다. 아, 나는 아직도 이렇게 겁쟁이구나, 하고 생각하고는 매번 이렇게 우리나라에서 가장 말도 안되는 현장으로만 몰리는 나를, 원래는 멱살한번 잡아본적없는 사람인걸 생각하고는, 또 내가 이제는 고참이 되서 이 어려운 순간에도 정신을 놓지말고, 20명이 조금 넘는 소대원들을 이끌어야 된다는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생각했다. 생각해보면 내가 처음 분대장을 잡고 촛불집회에 나간날, 내 바로 옆에 있던 갓 들어온 신병이 한 3초사이에 내 눈앞에서 사라졌다. 나한테도 몇명이 시위대가 달라붙어 끌어당기는 바람에 잠깐 정신을 놓고 있었던 것인데 그 사이에 내 바로옆에 있던 녀석이 영영 사라져버렸다. 더 솔직히 말해서 나는 그 녀석이 끌려가는 모습을 얼핏 봤었던 것 같다. 아주 잠깐이지만 먼저 끌려서 붙들려가는것을 보고 그다음에 나한테도 시위대들이 달라붙었던 것인데, 나는 솔직히 그냥 너무 무서웠다. 그래서 나는 애들을 뒤로 물렸고 나는 옆에서 그런일이 있었던걸 못봤다고 했다. 현대인들은 가상의 세계에 산다. 그것은 원문에 나온 '결과의 세계' 어떤 현실에서 출발해서 쌓아올려진 어떤것들이 극단적으로 발달해서 뿌리의 어떤 현실이 닿지 않는 인공의 조형물위에 토대로 한 세계다. 촛불집회에서도 마찬가지다. 가상에 기반해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 촛불집회는 다음과 아고라와 블로그와 댓글과 뉴스와 신문기사상에 존재했을 뿐이다. 원문에서 말한대로 지금 우리가 정치적 이슈에 무관심해진것은 우리가 가상에 세계에 존재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정치적 이슈이던 싸이월드던간에 손에 걸리는 것들은 모두가 가상이다. 어떤것도 실체를 파악할 수가 없다. 이런 가상의 토대가 만들어지기 전에는 그래도 현실은 가시권안에 있었다. 현실의 토대위에 무엇이 어떻게 만들어져 있는지 볼 수 있었기에 그것에 대한 사유가 있었고 아직 무엇이든 바뀔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 같다. 인류가 고작해야 수레로 무엇인가 옮기기 시작했을때 무엇인가 옮기고 또 수레를 만들고 움직이는 과정은 모두 현실의 가시권안에 있었을 테지만 가솔린기관의 6단미션짜리 세단에서는 많은 부분이 가상의 영역으로 넘어가고 이윽고 우리가 우주선안에서 태양계를 여행하고 있을때 우리는 현실과 가상의 판단을 포기를 한다. 마찬가지다. 나는 수많은 집회시위를 나가봤지만 내가 마주하고 있는 그들이 어떤 현실의 토대에서 어떤 구호를 외치는 일을 본적이 없다. 물질적인 위협은 대게는 생존의 범위에서 벗어나있고 어느정도는 복지가 되며 또 어느정도는 민주적 의사표현이 가능하다. 어떤 수사나 이데올로기적 설명없이 그들의 구호는 어떤 필연적 연역을 수반 하는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논쟁의 여지가 있는 정도에 불과하다. 여기서 나의 요점은 그들의 요구가 그냥 단순한 '불평'이라는 매도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논의되어야 할 '의제'라는 것이다. 그리고 대체적으로 그런 '의제'는 단순히 표면상의 내용뿐 아니라 수많은 정치적 이해관계와 의도로 네트워크된 역시 '가상의 세계'에 토대된 내용들이라는 점이다. 문제는 그러한 내용들이 여러 매체를 통해 더욱 극단적이고 절실한 것으로 포장되고, 스스로에게 그런 믿음을 강요하고 또 그런 믿음을 통해 '적'을 규정하고 '투쟁심'을 유발하는 과정으로 표현된다는 것이다. 결국엔 현실에서 시작된 의제가 새로운 가상으로 탄생하게 되는 그런 과정이다. 그런 과정에서 대부분의 참여자들은 현실을 파악하기를 포기하고 (사실은 그럴 의지도 없고 그런것을 이해할 바탕도 없고) 새롭게 형성한 가상속에서 종교적 행사에 참여하고 있을 뿐이다. 촛불집회에서도 그런 과정은 충분히 엿볼 수 있다. 미국산 소고기문제는 충분히 논의되어야 할 의제였다. 그렇지만 촛불집회를 거치는 동안 미국산쇠고기는 하나의 믿음이 되어갔고 실체는 점점 불분명해지고 그에 관한 신화를 쓰기위해 경찰과 전경이 동원되고 애초의 의제에서 한참이나 벗어난 지금까지도 가상의 실체는 여전히 건재하다. 어떤 의미있는 의제도 가상이 되어버리는 현실. 우리의 우주선은 너무나 복잡해서 모두가 쉽게 이해할 수 없기에 수레바퀴의 가상을 만들어 버리는게 지금의 '운동'의 현실이다. 자. 다시 나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내 눈앞에서 사라져버린 신병은 그래도 별일 없겠지란 나의 생각과는 달리 피범벅이 되어서 '발견'되었다. 우리는 아무도 때린일이 없는데 저쪽에선 '민주주의 국가' '폭력경찰' '니들이 뭘알어' '이명박의 하수인'같은 소리를 하고 있다. 100만이 모였다는 촛불집회에서 민주주의와 이데올로기에 대한 토론을 하던 사람이 있었던가? 그때 갑자기 어떤 빨간 복면을 쓴 학생이 나를 발로 차고 갔는데 둔탁한 소리가 나자 사람들이 갑자기 나쪽으로 몰려들어 '너 이새끼 왜 가만히 있는 사람을 때리냐'고 나한테 뭐라그런다 어떤 여자는 내 앞에 와서 '폭력경찰 개새끼를 다 죽어버려'라면서 울고 있고 나를 포함한 우리 소대는 또 한번 피곤한 몸으로 힘든 싸움을 치뤘다. 결국 바로 옆에서 일어나는 일조차 알 수 없는 혼돈의 공간에서 나는 오늘도 부들거리는 손을 남들 몰래 감추고서 20명쯤되는 소대원들을 가지고 제발 이곳에서 빨리 벗어날 수 있길 바라는데. 자, 나는 그순간 어떤 가상에서도 살고있지 않다. 어떤 구호조차 가상에서 외쳐지는 21세기의 대한민국에서 항상 말도안되는 곳으로만 내몰리는 우리는 어떤 가상에도 놓여있지 않다. 전의경들은 어떤 신문의 기사나 뉴스의 기사속에도 있지않다. 끌려가서 피범벅이 되는 현실과 무의미한 욕설만 던져지는 현실에서 오늘도 어떻게 하루를 견대낼까 생각하는 현실이 여기에 있다. 우리의 눈앞에 보이는 것만이 유의미하다. 많은 전의경들이 시위대에게 폭력을 행사한다. 그러나 그 누구도 그것에 대해 제대로 아는것이 없다. 폭력은 현실인데 다들 가상밖에 모른다. 이런 우리들의 아비투스는 무엇일까.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아비투스는 이곳에서 속절없이 와해된다. 물론, 이런 나 역시 이 현실에서 벗어나는 순간. 다시 가상의 영역에 몸을 던지고 나의 사고를 구조화해야한다. 지금의 전경들이 미래인 이 나라는 희망이 없다고 했지만 지금의 전경들은 미래의 그들이 아니다. 하루하루를 현재에 던져야 하는 지금의 전경들은 미래에 있지않다. 시위대들에게 방패를 내리찍는 지금의 전경들은 그들이 전역하는 순간 다시 그들의 세계에서 쿨해지기도 하고 싸이도 하면서 언제 그랬냐는 것처럼 다른 사람이 될것이다. 그러니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 다만, 걱정하고 싶다면 촛불집회에 모인 그 수많은 사람들이 어떤 진지한 고민도 없는 사람이라는 것이 걱정해야 된다. 그래, 바로 그 사람들이 싸이월드와 블로그에 열광하고 자신을 지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정치적이며 실제로는 세계에 무지하며 정치적으로 무관심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공정택이 교육감이 된것은 전경들이 단체로 1번을 찍어서 일어난 일이 아니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아마도 이글을 읽을 사람들과 트랙백한 원본을 읽을 사람들이 정말 무슨 이야기인지 조차 생각하려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
by 제라늄 메뉴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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